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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산악 (王山岳)은 고구려 국상 (國相)으로 삼국사기 악지(樂志)에 인용된 〈신라고기 新羅古記〉에 이름이 전한다. 진(晉 : 265~316)나라에서 고구려에 칠현금(七絃琴)을 보냈으나 고구려에서는 그 음률과 연주하는 방법을 몰라 음률과 타는 법을 아는 사람에게 후한 상을 주겠다고 했다.


이때 제2상(第二相)으로 있던 그가 칠현금의 원형태를 그대로 두고 만드는 방법을 약간 고쳐 100여 곡을 창작하여 연주하니 검은 학이 와서 춤을 추어 그 악기를 '현학금'(玄鶴琴)이라 불렀다. 뒤에 와서 그냥 현금(玄琴)이라 했는데, 이 악기가 오늘날의 거문고이다. 지안[集安]의 고구려 고분인 무용총과, 357년에 축조된 황해도 안악(安岳) 3호분 벽화에 거문고를 연주하는 모습이 나와 당시 거문고가 중요한 악기 중의 하나였음을 알 수 있다. 진을 동진(東晉 : 316~419)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중국 진나라에서 보내온 칠현금을 제이상 왕산악이 본디 모양을 그대로 두고 그 제도를 많이 고쳐 만들었다. 오동나무와 밤나무를 붙여서 울림통 위에 명주실을 꼬아 만든 6줄을 매고 술대로 쳐서 소리를 냅니다. 왕산악의 거문고를 탄생케 한 금(琴) 일곱 개의 줄을 가지고 있어서 칠현금이라고 하며 왼손으로 줄을 짚는 위치를 나타내기 위하여 자개로 만든 휘(徽)를 박아 놓았기 때문에 휘금이라고도 하는 '금(琴)'은 '슬(瑟)'과 더불어 중국의 고대악기에 속한다.

'금'은 순(舜)임금때 이미 5현금이 있었고 주나라의 문왕과 무왕이 각각 한 줄씩 더하여 칠현금이 되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삼국사기에 진나라에서 칠현금을 고구려에 보냈고 이를 개량하여 왕산악이 거문고를 만들었다는 기록 이외에는 다른 옛 문헌에는 '금'에 관한 기록은 찾아볼 수 없다. 다만 고려 예종11년 송나라에서 들여온 대성아악(국가적인 규모의 궁중의식이나 제례의식에 사용하는 음악)에 일현금, 삼현금, 오현금, 칠현금, 구현금 등의 이름이 보일 뿐이다.

'금'은 예로부터 사대부들의 인격을 수양하는 방편의 하나로 쓰이던 것이나 우리나라에서는 거문고의 위세에 눌려 별로 쓰이지 않았고 다만 부부사이의 화목한 모습을 가리키는 말로 금슬지우(琴瑟之友)나 금슬지락(琴瑟之樂)등의 표현이 일반적으로 쓰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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