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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묘제례(宗廟祭禮)또는 종묘대제(宗廟大祭)는 조선시대의 역대 과 왕비의 신위를 봉안한 종묘에서 지내는 제사이며, 종묘제례악(宗廟祭禮樂)에 맞추어 진행된다.[1] 종묘제례와 종묘제례악은 각각 중요무형문화재 제56호와 제1호로 지정·보존되고 있으며, 2001년 5월 18일에는 '종묘제례 및 종묘제례악'이라는 명칭으로 유네스코의 '세계 문화유산 걸작'에 함께 지정되었다.[2]

종묘 제례 편집

틀:무형문화재 정보 조선 시대의 종묘제례는 춘하추동 4계절과 12월 납일(臘日)에 봉행하였는데, 융희(隆熙) 2년(1908)에 공포된 칙령 〈향사이정령(享祀釐正令)〉에 의하여 납향제(臘享祭)가 폐지되고 4계절의 첫달인 춘정월·하사월·추칠월·동시월 상순내에 택일하여 봉행하고, 배향공신제(配享功臣祭)는 동향일(冬享日)에 한하여 행하였으며, 영녕전(永寧殿)은 춘추 두 번 종묘 제사와 더불어 향사(제사)하였다. 일제강점기 때에는 이왕직(李王職) 주관으로 향화(香火)만 올렸고, 광복 뒤에도 혼란·전쟁 등으로 향화마저 못하다가, 1969년에 전주이씨대동종약원이 주관하여 제향을 행하기 시작했다. 1975년 종약원은 종묘대제봉향위원회를 구성하였으며, 정부에서도 지원하여 매년 5월 첫째 일요일에 전통제례의식으로 대제를 봉행하고 있다.

종묘에는 태조에서 순종에 이르기까지 19실(室)의 신위를 봉안하고 있으며 별전(別殿)인 영녕전에는 16실의 신위를 봉안하고 있다. 서편을 위로하여 제1실이 있고 제19실이 동편 끝에 있으며, 영녕전도 같으나 전내 중앙에 정중실(正中室)을 삼아 목조ㆍ익조 등 태조 위의 4대 신위가 있다.

절차편집

제향은 왕이 직접 행하는 친행(親行)과 대신으로 대행하게 하는 섭행(攝行)이 있다. 친행과 섭행은 제관의 명칭과 품계(品階) 또는 축문(祝文)만 다를 뿐이다. 절차는 홀기(笏記)의 창홀(唱笏)에 따라 진행된다. 제례절차는 제관이 정해진 자리에 서는 취위(就位)·영신(迎神)·신관례(강신례)·진찬(進饌)·초헌(初獻)·대축(大祝)·아헌(亞獻)·종헌(終獻)·음복(飮福)·철변두(撤籩豆)·망료(望燎) 순으로 진행된다.

영신에서는 보태평지악(保太平之樂)과 보태평지무(保太平之舞)를 9번 반복 연주하고 일무(佾舞)는 문무(文舞)를 추며, 신관례 때 음악은 등가(登歌)에서 전폐(奠幣) 희문(熙文)을 반복 연주하고 일무는 문무를 춘다. 풍안지악(豊安之樂)도 연주한다. 초헌례에서는 보태평지악과 보태평지무를 올리고, 축문이 끝나고 초헌관이 원위치로 가면 악이 그치고 다시 보태평지무와 정대업지무(定大業之舞)를 올린다. 아헌례와 종헌례에서는 정대업지악(定大業之樂)과 정대업지무를 올린다. 음복례가 끝나면 옹안지악(雍安之樂)을 올린 다음 흥안지악(興安之樂)을 올린다.

제악(祭樂)은 세종 때 정한 종묘의 악에는 경안(景安)·승안(承安)·숙안(肅安)·옹안(雍安)·수안(壽安)·서안(舒安) 등이 있고 춤에는 열문(烈文)·소무(昭武) 등 아악(雅樂)이며 아헌부터 향악(鄕樂)을 교주하였다. 세조 때에는 세종께서 회례악무(會禮樂舞)로 창제한 정대업·보태평을 약간 덜고 보태서 종묘의 악으로 제정, 오늘에 이르고 있다. 악기는 아쟁·당피리·축·편종·장고·젓대·방향(方響)·해금·태평소·대금·진고(晋鼓) 등이다.

  1. 취위(就位): 제사가 시작하기 전에 제관(祭官)들이 정해진 자리에 배치됨
  2. 영신(迎神): 조상신을 맞이함
  3. 전폐(奠幣): 헌관(獻官)이 폐백을 신위(神位) 앞에 올림
  4. 신관례(晨祼禮): 왕이 제실(祭室)까지 가서 향을 피워 신을 맞아들임
  5. 진찬(進饌): 음식과 고기를 올림
  6. 초헌례(初獻禮): 초헌관(初獻官)이 술을 올리고 절하며 축문을 읽음
  7. 아헌례(亞獻禮): 신에게 둘째 술잔을 올림
  8. 종헌례(終獻禮): 마지막 술잔을 올림
  9. 음복례(飮福禮): 제사에 쓴 술이나 음식을 나누어 먹음
  10. 철변두(撤籩豆): 제상에 놓인 제기(祭器)를 거둠
  11. 송신(送神): 조상신을 보냄
  12. 망료(望燎): 제례에 쓰인 축문과 폐를 태움
  13. 제후처리(祭後處理): 제례가 끝난 뒤 정리함

제기(祭器)는 63기가 있으며, 제물(祭物)은 삼생(三牲), 이갱(二羹), 서직도량(黍稷稻梁), 이제(二齊), 삼주(三酒), 육과(六果), 육병(六餠), 이포(二脯), 사해(四醢), 사조율료(四俎率膋), 모혈(毛血) 등을 쓴다.

제복(祭服)은 왕은 구장면복(九章冕服), 즉 면류관(冕旒冠)에 구장복을 입었다. 면류관의 모(帽) 위에 장방형 판은 짙은 흑색, 안은 홍색이며, 앞뒤에 황·적·청·백·흑·홍·녹색의 주옥(珠玉)으로 구슬줄을 9류ㆍ12류씩 매달고 관 위에는 옥잠(玉簪)을 꽂았다. 구장복은 짙은 흑색이며, 안은 청색으로 된 대례복(大禮服)이다. 상의 양어깨에는 용을 수놓았고, 등에는 산이 그려져 있다.

현행 제례(祭禮)는 간략화 되었다.

종묘제례악편집

틀:무형문화재 정보

파일:Jongmyo DSC 6828.jpg

종묘제례악은 조선왕조 역대 임금과 왕후의 신위(神位)를 모신 종묘에 제사드릴 때 연주하는 기악·노래·무용의 총칭으로 '종묘악'이라고도 한다.

종묘제례의식에는 각 절차마다 보태평(保太平)과 정대업(定大業)이라는 음악을 중심으로 여러 음악을 연주하며 동시에 종묘악장(宗廟樂章)이라는 노래를 부르며 문덕(文德)을 찬양하는 문무(文舞)인 보태평지무(保太平之舞)와 무덕(武德)을 찬양하는 무무(武舞)인 정대업지무(定大業之舞), 곧 일무(佾舞)를 춘다.

종묘제례악은 장엄하고 웅대한 음악이며 500여 전에 전승되던 고취악(鼓吹樂)과 향악(鄕樂)이 제례악(祭禮樂)으로 승화되어 전승되어온 귀한 음악이다.

역사 편집

세종 31년(1448년)에 세종이 국초에 여러 곡을 지었는데, 조종(祖宗)의 공덕이 성대함과 초창(草創)의 어려움을 나타내기엔 부족하다 하여 고취악(鼓吹樂)과 향악(鄕樂)을 토대로 보태평·정대업·발상(發祥)·봉래의(鳳來儀) 등 새 음악을 창제하였다.

보태평은 11곡(曲·聲)이고 정대업은 15곡인데, 여기에 조종의 공덕을 기리는 악장(樂章)을 얹어 부르게 하고 아악기(雅樂器) 당악기(唐樂器) 향악기(鄕樂器)를 섞어 편성하여 연주하고 문무와 무무를 일무(佾舞)로 추도록 하여 연향(宴享)에서 공연하였다.

세조 9년(1463)에 보태평과 정대업을 개편하여 세조 10년에 처음으로 종묘제향에서 연주되었다. 이 제례악은 선조 때 임진왜란으로 음악이 약화되었으나 광해군 때 점차 복구되었으며 인조 4년(1626)에 보태평 중 정명장(定明章) 다음에 중광장(重光章)을 삽입하였으며, 1946년까지 제향에서 연주하였고, 그 뒤 멈추었다가 1971년부터 해마다 5월 첫 일요일에 행하는 종묘대제에서 종묘제례악과 악장과 일무가 동시에 연행되고 있다.

종묘제례악은 조선말기까지 장악원(掌樂院) 악사(樂士)들에 의하여 전승되었고, 일제 때에는 구황궁아악부(舊皇宮雅樂部) 악사에 의하여 전승되었으며, 광복 후에는 국립국악원 악사들에 의하여 전승되고 있다. 보유자는 김종희 외 여러 명이다.

구성 편집

현재 보태평은 희문(熙文), 기명(基命), 귀인(歸仁), 향수(享壽), 집녕(輯寧), 융화(隆化), 현미(顯美), 용광정명(龍光貞明), 중광(重光), 대유(大猷), 역성(繹成) 등 11곡으로 구성되었고 정대업도 소무(昭武), 독경(篤慶), 탁정(濯征), 선위(宣威), 신정(神定), 구웅(舊雄), 순승(順應), 총수(寵綏), 정세(靖世), 혁정(赫整), 영관(永觀) 등 11곡으로 구성되었다. 보태평은 황종궁평조(黃鐘宮平調)[3]로 되어 있고 정대업은 황종궁계면조(黃種宮界面調)[4]로 되어 있다.

악기는 (拍), 편종(編鐘), 편경(編磬), 방향(方響), 피리, 대금(大琴), (柷), (敔), 해금(奚琴), 진고(晋鼓), 마조촉(摩照燭), 절고(節鼓), 아쟁(牙箏), 태평소(太平簫), 대금(大金)으로 편성된다.

종묘제례의 영신례(迎神禮)와 전폐례(奠幣禮)에서 악사들은 희문이라는 보태평 제1곡을 아뢰고, 초헌례(初獻禮)에는 보태평을 아뢰며 도창(導唱)은 조종의 문덕(文德)을 기리는 악장을 노래부르며 무원(舞員)들은 손에 약(籥)과 적(翟)을 갈라쥐고 문무(文舞)를 팔일무(八佾舞)로 춘다. 아헌례(亞獻禮)와 종헌례(終獻禮)에서 악사들은 정대업 전곡(全曲)을 아뢰고 도창은 조종의 무공(武功)을 찬양하는 악장을 부르고 무원들은 앞두줄은 목검(木劍)[5]을 들고 중간 두줄은 목창(木槍)[6], 뒤로 두 줄은 활과 화살을 들고 무무(武舞)를 팔일무로 춘다. 진찬(進饌)·철변두(徹邊豆)·송신례(送神禮)에는 아악곡(雅樂曲)을 아뢰고 악장과 일무(佾舞)는 없다.

주석 편집

  1. 종묘제례악은 음악 뿐 아니라 무용을 포함한다.
  2. 인류구전 및 문화유산 걸작, 유네스코 한국위원회
  3. C-Sol 선법(旋法)
  4. C-La 선법
  5. 나무칼
  6. 나무창

참고 문헌 편집

틀:서울시공개자료

같이 보기 편집

틀:대한민국의 세계기록유산과 세계무형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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